역사의 흐름에 맞서
프랑스-시암 평화 조약(1893년 10월 3일) 이후 라오스는 시암으로부터 분리되어 통일되었습니다(이전에는 작은 왕국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중부 고원 지대를 라오스에 합병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공식적인 행정 단위라는 의미의 '다를락( 닥락 )'이라는 지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899년 11월 2일, 인도차이나 총독 폴 두메르의 결정 제917호에 따라, 스퉁트렝 지역, 라오스의 참파삭 왕국에 속하는 "다크락 행정 기관"이 탄생했습니다(나중에 스퉁트렝 주는 인도차이나 연방 시대에 캄보디아로 이전되었습니다).
1904년 11월 22일, 다크락은 공식적으로 라오스에서 분리되어 응우옌 왕조의 통치를 받는 안남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다크락이라는 지방 행정 단위의 공식 "탄생"이라는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붕로 항구는 닥락과 푸옌 두 지역 간 무역을 전 지역으로 연결하는 데 기여합니다. 사진: 다오 득 투안 |
그러나 2024년 10월 말, 닥락성 당위원회와 호치민 국립정치아카데미가 공동으로 주최한 "닥락 - 120년의 여정과 발전"(1904년 11월 22일 - 2024년 11월 22일) 학술대회 자료에 따르면, 닥락은 푸옌성의 지배를 받았고, 꼰뚬은 중부 베트남 프랑스령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1904년~1923년)가 있었습니다. 1923년 7월 2일이 되어서야 닥락 행정청이 꼰뚬성에서 분리되어 별도의 지방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닥락과 푸옌이라는 두 땅은 한때 "둘이 하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정권 하에서 살든 그 이름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드넓은 숲과 바다를 잇는 숲과 강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독특한 역사·문화 공간을 만들어내며, 이곳 주민들은 오랫동안 서로에게 친밀하고 애착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다
과거 7세기에서 15세기까지 바강이 다디엔 어귀를 통해 바다로 흘러드는 곳(오늘날 푸옌성 투이호아시)은 번화한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레탄통 왕조부터 응우옌 군주와 그 후의 응우옌 왕조까지 동서 방향으로 바강 축을 기반으로 한 교류와 무역은 항상 철저히 개발되어 중부 해안과 중부 고원을 연결하는 역동적이고 중요한 경제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크락과 푸옌은 잊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로 떠올랐습니다. 노래에서 말했듯이 "돌아온 사람은 그 근원을 알려주시오/ 죽순을 내리게 하고 날치를 올리게 하소서..."
닥락과 푸옌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인 29번 국도. 사진: 다오 득 투안 |
그렇다면 "출처"란 무엇일까요? 응우옌 왕조 시대와 그 이후 응우옌 왕조 시대에는 강 끝자락에 지방 당국이 저지대와 고지대 사이의 임산물을 구매하기 위한 교역소를 세웠고, 이 교역소를 "출처"라고 불렀습니다. 바 강에는 탁탄(Thach Thanh) 출처가 있는데, 현재 푸옌성(Phu Yen Province) 떠이호아현(Tay Hoa District) 호아푸사(Hoa Phu Commune) 리엔탁(Lien Thach) 마을에 있습니다. 탁탄은 뚜이호아 평원(Tuy Hoa Plain)과 닥락산맥(Dak Lak Mountains)에 접한 준산악 지대입니다. 20세기 초, 닥락의 소수 민족이 코끼리를 타고 이곳으로 와서 물건을 교환하던 리엔탁 시장(돈(Don) 시장이라고도 함)도 있습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닥락과 푸옌 두 지역의 전통과 애정은 오늘날 건설, 개발, 그리고 긴밀한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풍부하고 새롭고 편리한 연결 공간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확장되어 왔습니다. 특히 중앙 정부의 통합 정책에 따라 닥락과 푸옌이 "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황금빛 숲과 은빛 바다"의 땅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부흥할 새로운 공간과 자원을 창출할 것입니다.
출처: https://baodaklak.vn/van-hoa-du-lich-van-hoc-nghe-thuat/202505/nghia-tinh-giua-hai-vung-dat-dd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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