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드 캐스트리스 장군이 포로로 잡혔던 디엔비엔푸의 벙커 클로즈업
2024년 5월 1일 수요일 오전 8시(GMT+7)
디엔비엔푸 전장을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역사적인 드 카스트리스 벙커를 놓칠 수 없습니다. 드 카스트리스 장군이 베트남 인민군에 비참하게 항복한 곳입니다.
영상: 70년 전 드 캐스트리스 장군이 체포된 벙커.
1954년 5월 7일, 우리 군대의 "싸움에 대한 결의 - 승리에 대한 결의" 깃발이 드 카스트리스 장군의 지휘 벙커 지붕에 게양되어 디엔비엔푸 전투의 완전한 승리를 알렸습니다. 우리 군대와 국민이 56일 밤낮으로 끈기 있고 용감하며 창의적인 싸움을 벌인 끝에 "5대주에 울려 퍼지고 전 세계를 뒤흔든" 디엔비엔푸 승리가 탄생했습니다.
이 벙커는 당시 가장 튼튼한 재료로 설계되고 건설되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화력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터널의 지붕은 아치형 강철판으로 덮여 있고, 그 아래에는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습니다.
참호에 둘러싸여 있음.
드 캐스트리스 벙커는 길이가 20m, 너비가 8m이고 4개의 구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드 캐스트리스 장군의 근무지이자 휴식처이며, 디엔비엔푸 요새군의 사령관이기도 합니다.
드 카스트리스 벙커는 본부였기 때문에 견고한 요새로 지어졌습니다.
이 벙커는 당시 가장 현대적인 무기와 전쟁 차량으로 보호되었습니다. 사진은 지휘소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벙커 주변에 배치된 4대의 프랑스 방어전차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에도 지하실의 구조와 배치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사진은 디엔비엔푸 요새의 저항 중심지를 나타낸 도표입니다.
벙커에 있는 드 캐스트리스 장군의 철제 책상.
오후 5시 30분 1954년 5월 7일, 312사단 209연대 360중대 사령관인 타 꾸옥 루앗 씨는 지휘 벙커에 있는 그의 책상에서 드 캐스트리스 장군을 살아있는 채로 붙잡았습니다. 드 캐스트리스 장군과 그의 일행 20명은 무조건 항복하고 베트남군 병사들의 총열 사이로 벙커에서 나왔습니다. 사진: 국립문서기록센터 3호
56일 밤낮으로 끈기 있고 용감하며 창의적인 싸움을 벌인 끝에, 우리 군대와 국민은 "5대주에 울려 퍼지고 전 세계를 뒤흔든" 디엔비엔푸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이 승리는 인도차이나에서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제네바 협정의 체결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진은 디엔비엔푸 역사승리박물관에서 디엔비엔푸 전역의 파노라마 사진으로, 드 캐스트리스 장군이 벙커에서 나오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드 캐스트리스 터널은 요즘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목적지입니다.
글쓰기 - 빈 주이
[광고_2]
원천
댓글 (0)